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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이야기] 118. 역경에도 끄떡없는 ‘소사나무’
작 성 자 관리자 작성일 2018-11-02 15:39 조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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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역경에도 끄떡없는 소사나무

 

.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기획홍보팀장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뉴욕식물원에서 가드너로 일하고 있는 친구가 가족들과 추석을 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와 나는 천리포수목원에서 업무로 만나 인연을 이어오다 친구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늘 그렇듯 까맣게 그을린 피부와 단단한 근육질 몸매로 건강미를 풍기고 있었다. 타국에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친구를 만나는 동안 불현듯 머릿속에 소사나무(Carpinus turczaninowii Hance)떠올랐다.

  

소사나무는 중국 동북부, 일본 혼슈 이남을 포함해 우리나라는 황해도 이남에 자생하는 토종식물이다. 주로 서·남해안 바닷가의 모래땅과 바위틈에서 거친 바람을 견디며 살아가는데, 웬만한 추위, 건조, 염분, 대기오염에 끄떡없을 정도로 강인하다. 운동과 가드닝으로 다져진 친구의 꿀벅지처럼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줄기는 안정되게 잎과 가지를 받치며 구불구불하게 비틀려 우아하고 멋스럽다. 척박한 환경에서 굳건히 뿌리를 내딛고, 지그재그 거침없이 하늘로 뻗어난 자유분방함과 다부진 근육질 몸매를 가진 소사나무가 마치 친구처럼 느껴져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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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활엽관목 또는 소교목으로 분류되는 소사나무는 10m 내외로 자라는데, 잎이 작고 가지를 잘라준 자리에 새순이 잘 돋아나 분재용으로 즐겨 이용한다. 화분에서도 잘 자라고 비교적 관리하기도 쉽고, 고목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절제된 농축미를 느낄 수 있으니 분재 애호가들에게 필수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나무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재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불법채취가 빈번해서 개체군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 올해 8월 충남도에서는 충남 야생 생물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고시하여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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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포수목원에는 사연 깊은 소사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목원을 조성하면서 설립자이신 고() 민병갈 원장님이 본인과 직원들의 숙소와 창고 등으로 쓰기 위해 수목원 내 여러 채의 한옥과 초가집을 두었다. 그중 하나가 소사나무집인데, 1970년 무악재 도로공사로 헐리게 된 사대부집 안채를 옮겨와 전망 좋은 해안가 절벽 위에 2년이 넘도록 정성을 들여 지었다. 내부는 서양식이지만, 온돌과 아궁이가 있던 집은 10년간 민원장님의 숙소로 애용되었다. 지금 수목원에서 볼 수 있는 소사나무는 1982년에 소사나무집 옆에 심은 나무로 37년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운명처럼 소사나무집과 함께 자란 나무는 2000년 소사나무집에 게스트로 오신 스페인대사관이 짐을 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원인모를 화재로 집이 전소되면서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집이 다 탈 정도였으니 바로 옆에 있던 소사나무의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반이 타고 그을려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싶었던 나무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남아서 새 가지를 뻗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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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후 2년 뒤 민병갈 원장님은 세상을 떠났고, 수목원 직원들은 민원장님이 오래도록 애정을 쏟았던 소사나무집을 다시 짓기로 하고 2007년 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양으로 소사나무집을 복원했다. , 집의 규모는 조금 줄어들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소사나무가 예전보다 더 자라 있었기에 나무를 옮기는 대신 집을 줄여 나무를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나무를 배려해 집을 줄이는 것이 상식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나무가 행복해야 더불어 인간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천리포수목원에서는 이게 현실이고, 이게 상식이다.

 

거친 모래바람과 해풍이 할퀴는 해안 절벽 위에서, 그리고 몸이 타들어가는 화마 속에서도 끄떡없이 자신을 보살피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사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가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사나무는 강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화재사건을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인위적으로 가위질하지 않고, 철사로 구부린 것도 아닌데 여느 분재보다 훨씬 더 근사하고 운치 있게 자라 소사나무집을 지키고 있다.

 

지난 일요일에 미국으로 떠난 소사나무를 닮은 친구에게 이번에 쓴 원고를 꼭 보여주며 내 마음을 전해야겠다. 그녀 곁에 소사나무집처럼 바람을 막아주고 말벗이 되어주는 친구가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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