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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이야기] 117. 알면 알수록 고개 숙여지게 하는 벼
작 성 자 관리자 작성일 2018-09-28 19:14 조회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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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알면 알수록 고개 숙여지게 하는 벼

 

.사진_천리포수목원 최수진 기획홍보팀장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의 열기가 조금씩 가을바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9월이다. 수목원 중앙에 자리 잡은 논에는 5월에 심은 벼(Oryza sativa L.)가 보일랑 말랑한 조그만 벼꽃을 살랑이며 가을을 재촉한다. 수목원에 논이 있고, 그 논에 벼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다. 수목원 조성초기에 지금의 논을 포함한 주변 땅을 구입한 민병갈 설립자는 논농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오랜 문화를 잇고, 쌀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벼농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 하셨다. 더구나 벼는 수목원 내에 자리 잡고 있던 초가집의 지붕재료로, 그가 좋아했던 개구리의 놀이터로,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로 요긴한 존재였기에 수목원의 주요한 식물자원으로 여겼다. 그러한 이유로 천리포수목원은 매년 직접 논을 갈고, 줄을 띄워 모내기를 하고, 김매기를 하며 고이 벼를 키워 가을이면 낫으로 추수를 한다. 해마다 흰뺨검둥오리가 수목원에서 새끼를 부화해 논에 써레질도 해주고 해충도 잡아주며 벼를 돌봐주고 있어 오리농장이라는 정겨운 별명을 논에 붙여주었다.

 

입사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수목원 오리농장에서 얻은 값진 경험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입사 첫날에 내일 수목원에서 피를 뽑을 거니 준비하고 오라는 팀장님의 말에 피를 뽑는데 뭘 준비하고 오라는 거지?’ 의아해하며 몸이라도 더 깨끗하게 씻고 가야겠다며 몸단장을 마치고 출근을 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한 마지기가 채 안 되는 논에 들어가서 벼 사이의 불청객으로 자라고 있는 피를 반나절 넘게 뽑을 줄이야! 마음의 준비도 작업의 요령도 없이 질퍽한 논바닥을 휘저으며 피를 뽑고 나서 다음날 머리도 못 감을 정도로 허리와 고개가 아파서 뻣뻣하게 출근했던 웃지 못할 기억이 난다. 쌀을 뜻하는 한자 ()’가 쌀을 얻기 위해 무려 88번이나 농부의 손길이 닿아야 해서 팔십팔(八十八)을 조합해 만들었다는 말에 깊은 공감이 생기는 이유도 이 날의 경험 덕분이다.

 

벼는 우리에게 쌀을 주는 곡식의 기능 외에도 많은 이점을 가진 식물이다. 정원에서는 가을철 이보다 좋은 단풍을 보여주는 식물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식재 소재이자 줄기와 열매의 껍질은 건축재료는 물론이고 각종 생활 도구와 연료, 거름으로 이용 된다. 또한 광합성을 통한 산소 공급과 하천변 습지처럼 천연 정화 능력을 갖고 있고, 거머리, 우렁이, 메뚜기, 방아깨비, 거미 등에게는 최적의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추수를 마친 논에는 물을 가두어 겨울철 얼음이 얼면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썰매 터가 된다. 벼를 알면 알수록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되는 이유들이다.

 

매일 쌀밥을 먹어도 벼에 대한 관심이 적고 예사롭지 않게 여기기에 요즘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벼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오죽하면 쌀나무란 말이 나왔을까. 나 역시 벼는 알아도 벼꽃은 수목원에 와서 처음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벼꽃은 매우 작고 개화도 3~5일간 동안만 피었다가 사라져버리기에 눈도장을 찍는 일이 쉽지 않다. 벼꽃은 꽃잎은 없지만, 암술 1, 수술 6개를 가지고 있고, 바람의 도움으로 수분을 한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어디 있으랴하는 시인의 싯 구절처럼 벼야말로 바람에 흔들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벼는 꽃이 피기 시작한 뒤 25일 정도 지나면 낱알이 익기 시작해, 35~45일 즈음 완전히 무르익고 무거워져 고개를 숙인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는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의 주인공이지만, 우리는 그 벼에 담긴 여러 과정과 의미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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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천리포수목원 오리농장에 잎의 색이 다른 벼를 활용해서 피아노 건반 형태를 살려 모내기를 했다. 논을 캔버스 삼아 색깔 있는 벼로 그림이나 글자를 그리는 예술기법을 우리나라에서는 논아트’, ‘단보아트등으로 부른다. 논아트는 1993년 일본의 아오모리 현에서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한 이벤트로 처음 시작되어서 현재는 매년 20만 명 이상이 아오모리 현을 찾아 주요 관광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수목원은 올해 처음 논아트를 시도했기에 초보 중의 초보 수준 밖에 되지 않지만, 예년과 달리 이색적인 경관을 연출하며 벼를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쌀 한 톨의 의미를 되새기며 밥상 앞에서 벼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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