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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이야기] 97.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100일 개화 '배롱나무'
작 성 자 관리자 작성일 2017-08-24 10:18 조회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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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100일 개화배롱나무

 

최수진_ 천리포수목원 홍보실장

 

   푸르다 못해 검푸르기까지 했던 여름 정원이 어느덧 끝자락에 와 있는 듯하다. 폭염 속에서 화사한 꽃송이를 피웠던 꽃들이 애잔히 사그라지고, 조용히 가을맞이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했거늘... 한편에는 지는 꽃들 사이로 아직도 건재함을 과시하는 꽃이 있으니 바로 배롱나무(Lagerstroemia indica 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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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롱나무는 7월부터 9월까지 여러 꽃들이 교대로 피고 지면서 줄기차게 이어지기 때문에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배롱나무의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연보라색, 연분홍색, 흰색의 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붉은색의 꽃이 많다. 지속적으로 꽃을 피워내어 초본식물의 백일홍과 흡사하다는 뜻으로 백일홍나무라 불리다가 배기롱나무를 거쳐 배롱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짧게 살다 지는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서도 온 힘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법이거늘, 이름처럼 백일동안 꽃을 피우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더구나 오랫동안 꽃을 피운다고 꽃 한 송이 대충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어쩜 그리도 오밀조밀 정교하게 빚어 놓았는지 붉은 꽃 뭉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주름진 치맛자락을 늘여 놓은 것 같은 6장의 꽃잎도 인상적이지만, 여러 개의 수술 중에서도 꽃송이 사이마다 길게 늘어나서 안쪽으로 동그랗게 말린 가장자리 6개의 수술이 돋보인다. 겹겹이 둘러쳐진 치마 사이로 현란한 발놀림을 보여주는 무희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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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도 꽃이지만, 배롱나무의 매끈한 줄기는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은다. 남성의 힘이 물씬 풍기는 근육질 몸매 같기도 하고, 어느 때는 여성의 미끈한 피부 같기도 한 줄기는 얇은 껍질이 벗겨져 독특한 얼룩무늬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얼마나 매끈했던지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도 떨어져 미끄럼을 탄다고 일본에서는 원숭이 미끄럼 나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특색 있는 줄기는 만지면 마치 나무가 간지럼을 타듯 나뭇가지 끝을 흔든다 하여 충청도, 제주도 지역에서는 간지럼나무라는 뜻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수목원에 있는 배롱나무마다 사람들이 간지럼을 너무 태워 줄기가 원래보다 더 반질반질 해졌다. 방문하시는 분들은 단 한 번의 경험이지만, 배롱나무 입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간지럼을 받아야 하니, 그 스트레스도 꽤 클 듯하다. 사실 수목원과 같은 외부 공간에서는 간지럼을 태워서 나무가 흔들리는지, 바람이 불어 나무가 흔들리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우니, 나무를 배려하는 입장에서 조금 자제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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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남부가 원산인 배롱나무는 낙엽소교목으로 적당히 자라는 키에 옆으로 넓게 퍼지면서 맵시 있게 자란다. 양반처럼 느긋하게 기다리며 늦게 싹이 돋는다 하여 예로부터 양반가, 사찰, 서당 등에 즐겨 심었다. 설총이 신문왕의 방탕함을 깨우치기 위해 들려주었다는 화왕계에서 충성심 깊은 신하로 묘사되기도 한 배롱나무는 충절과 절개의 상징인 성삼문이 사랑한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여섯 개의 꽃잎, 꽃이 진 뒤에 열매도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 배롱나무를 두고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의 숫자와 같다며 충절과 절개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개화에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는 뜻에서 무덤가에도 많이 심었다고 하는데, 묘지의 음산한 분위기를 몰아내기에도 이보다 좋은 나무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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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꽃들 무리 지어 떠난다고 따라가는 법 없이 혼신의 힘을 다해 꿋꿋이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있어 여름의 끝자락이 덜 쓸쓸하다. 배롱나무가 외로이 꽃을 피우고 꽃이 다할 때 즈음 가을이 와 있을 터이니, 이 또한 덜 쓸쓸하리라. 떠나는 여름도, 다가올 가을도 배롱나무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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