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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봄을 위한 전주곡, 그리고 기다림으로 아름다운 계절
작 성 자 천리포수목원 작성일 2014-01-26 16:19 조회 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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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위한 전주곡, 그리고 기다림으로 아름다운 계절
 
- 겨울비에 젖은 천리포수목원을 거닐며...
                                                                                                                                 교육팀_ 남수환
 
  어제는 봄이 온 것처럼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더니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수목원을 오시는 대부분의 분들이 함박눈 내린 풍경을 보고 싶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겨울비 내린 수목원이 더 특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이니 눈이 내리는 건 당연하지만 비가 오는 건 참 특별한일인 듯 합니다. 그런 날 수목원의 풍경과 식물들을 보는 것도 매우 특별하리라 생각됩니다.

 
  비가 내린 수목원의 풍경은 한마디로 봄을 갈망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며칠 전까지는 큰연못을 비롯한 수목원 전체가 꽁꽁 언 듯한 느낌이었는데 오늘 풍경은 생기가 있어 보입니다. 얼어있던 큰연못이 녹았고 얼어있던 나뭇가지에 빗방울만 더해져 있을 뿐인데 느낌은 너무도 다릅니다. 하지만 꼭 느낌은 아닐 겁니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잠시 동안의 시간이겠지만 수목원은 겨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연못을 향해 속삭이듯 드리워진 버드나무가 물속까지 가지를 뻗고 있고 연못가장자리를 덮고 있던 꽃무릇과 창포가 생기 있어 보입니다. 꽁꽁 얼어있다고만 생각되는 겨울이란 계절에 생기 있는 식물을 볼 수 있는건 오롯이 겨울비의 힘입니다. 비가 세상을 이렇게 바꿀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니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혹시 눈꽃을 보지 못해 아쉬운 생각이 드시나요? 그럼 조금만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수목원속의 식물들에는 눈꽃대신 진주 같은 빗방울이 맺혀 있습니다. 빗방울이 특별한 이유는 그 작은 공간속에 수목원의 모든 풍경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빗방울은 한눈을 파는 사이 사라져 버리고 이내 다시 생기는게 마치 살아 있는 듯 합니다.
 
 
  그런 빗방울이 오늘 가장 탐했던 식물은 납매입니다. 다른 식물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납매에는 유독 많은 빗방울이 맺혔습니다. 수목원을 오시는 많은 분들이 납매를 찾듯 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꽃잎에 맺히다 못해 나뭇가지 전체를 적셨습니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요? 이 계절에 수목원을 거닐다보면 어디선가 진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갑니다. 무슨 향기일까? 하고 잠시 의문을 갖지만 이러한 의문은 곧 잊고 마는데 그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리포수목원 탐방안내소에서는 오시는 분들에게 납매를 꼭 보고 가시라고, 향기도 꼭 맡고 가시라고 하루에서 수백 번씩 말씀을 드립니다. 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이 겨울에 꽃이 있다고 생각지도 않거니와 꽃이 피어도 이처럼 진한 향기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납매의 향기는 정말 진합니다. 그 향기가 얼마나 진하던지 겨울비마저 유혹해 버렸으니까요. 납매(臘梅)는 섣달에 피는 매화라고 불립니다. 올해는 더 특별하게 섣달의 첫날에 첫꽃눈을 터트렸습니다. 그렇게 피운 납매가 이제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눈속에서의 납매도 아름답지만 빗속에서의 납매는 더 아름답습니다. 이는 생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납매의 향기 이야기를 더해 볼까요? 앞에서는 겨울비를 유혹할만큼 진하다고 했는데 그건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걸수도 있지만 아래 사진을 보면 향기가 정말 진하다는 것을 모든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납매 향기를 맡으려 조금 더 가까이 갔는데 매우 익숙한 곤충 한 마리가 납매 꽃에 앉아 있습니다. 그 익숙한 곤충은 파리였습니다. ‘너도 유혹 당했구나라는 혼잣말을 내뱉고 웃으며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에 파리가 활동하는게 정상인가 하는 의문과 이러한 의문은 파리의 생태까지 찾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파리는 일반적으로 겨울철에는 모두 죽지만 소수의 파리들이 겨울철 먹이가 있는 곳에서 살아남아 겨울을 나게 되며 이후 활동이 가능한 시기가 되면 왕성한 번식력으로 번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럼 납매를 찾은 파리 역시 이 겨울에 살아남은 아주 적은수의 파리 중 한 마리였는데, 그리고 종족의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존재인데 납매 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건 외출을 감행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비가 내려 온몸이 젖음에도 꽃과 향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파리목숨이라지만 지금 파리목숨은 아주 귀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귀한 목숨을 걸 정도면 납매향이 얼마나 진한지 이해가 되시나요?
 
 
  천리포수목원의 겨울에 대해 언젠가 그런 표현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겨울풍경을 사람으로 표현하면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라고... 그만큼 수수하고 화려하지 않은 풍경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목원의 모든 풍경이 그런 건 아닙니다. 일부의 공간은 지금이 가장 화려한 듯한 느낌입니다. 그 장소는 바로 겨울정원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겨울정원에는 푸른 잎을 가진 호랑가시나무를 배경으로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남천, 노랗고 빨간 수피를 가진 말채나무 노란꽃망울을 줄기차게 터트리는 뿔남천, 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개화를 준비하는 매화까지... 겨울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려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겨울정원속에 채집목 줄기에서는 겨울비를 맞고 생기를 찾은 생명이 있습니다. 바로 지의류라고 불리는 생물입니다. 지의류는 온전한 식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균류도 아닌 균류와 조류의 복합체로 이루어진 생명입니다. 오래된 나무나 돌에 붙어살며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한데 건조한 시기에는 모두 말라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비를 머금으면 생기가 돕니다. 이처럼 비는 생명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직접적인 생명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생물들의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또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이니 하나의 생명으로 봐도 무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봄을, 봄비를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봄비 같은 겨울비가 내려 너무 행복한데 혹시 내일은 추워져 오늘 내린 비가 꽁꽁 얼까 한편으론 걱정이 됩니다. 눈꽃이 내린 풍경도 좋지만 이제는 연두빛 새싹이 돋는 봄이 조금씩은 그리워 지기도 합니다.
 

  봄은 어디만큼 와 있는 걸까요?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봄이 시작된 건 아닐까요? 이제 일월도 한주밖에 남지 않았고 조금 있으면 입춘이 됩니다. 정말 봄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봄은 매우 특별합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400품종이 넘는 목련들과 목련만 있는 목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목원을 오셨던 많은 분들은 만날 때마다 목련 이야기를 합니다. 언제 목련이 피냐고... 언제쯤이 가장 예쁠 것 같냐고... 목련 피는 시기에 꼭 갈거라고... 그러면서 또 묻습니다. 올해는 목련이 언제 필 것 같냐고... 하지만 저도 신이 아니니 언제 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목련을 보시려거든 자주 오시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말씀 드립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특별한 목련이 있습니다. 그 목련이 특별한 이유는 천리포수목원의 목련 개화의 시작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 목련은 이름은 비온디아이목련(Magnolia biondii)입니다. 한번 들으면 잘 잊어버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목련입니다. 이름이 생소하지만 이렇게 기억하면 쉽습니다. 봄비가 내린후에 피는 아이... 그래서 비온디아이...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적어도 천리포수목원에서 만큼은 말이죠.

 
 
  작년에는 얼리버드목련이 더 이른시기에 꽃을 피웠지만 작년 말고는 비온디아이목련이 항상 제일 먼저 꽃눈을 터트렸습니다.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다는 걸 알지만 비온디아이목련 옆을 지날 때마다 꽃눈을 쳐다보곤 합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꽃은 두터운 눈비늘에 싸여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봄바람이 불면 이 눈비늘을 한 꺼풀 씩 벗어낼 겁니다. 봄은 그렇게 시나브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 겨울비 한 방울 머금은 목련 꽃눈이 아름답지 않으신가요? 이 꽃눈에서 커다란 목련꽃이 핀다는 것이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그 봄이 기대되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겨울은 행복한 계절입니다. 기다리는 계절... 봄 햇살 마냥 노오란, 새색시의 상기된 볼빛깔 같은 분홍의, 세상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을 것 같은 순결한 하얀 꽃들이 피어날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계절... 겨울은 그런 계절입니다. 봄이 더 아름다운건 겨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겨울의 아름다움을 보시기 바랍니다. 눈내리는 겨울, 그리고 비내리는 겨울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식물들과 같은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 겨울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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