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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를 찾아서] 공룡 시대의 유전자를 간직한 화석 속의 나무를 바라보며
작 성 자 천리포수목원 작성일 2013-10-23 13:19 조회 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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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아서] 공룡 시대의 유전자를 간직한 화석 속의 나무를 바라보며
 
 

    [2013. 10. 21]

   높지거니 솟은 가죽나무 가로수의 가지에서 마른 잎 하나 떨어져 초속 5센티미터로 천천히 땅 위에 내려앉습니다. 가을 아침의 한기에 진저리를 치듯 부르르 떨고는 곧바로 그보다 먼저 떨어져 나온 잎들 사이로 빗겨 들어갑니다. 깊어가는 가을 날 아침입니다. 여느 가을에 비해 분주한 날들을 보내는 사이, 가로수 나뭇잎에 가을 색이 짙어졌습니다. 초록을 다 내려놓은 벚나무 길쭉한 잎사귀에는 노란 빛이 올랐는데, 같은 벚나무이면서도 유독 한 그루만은 선명한 붉은 빛이 올랐습니다. 유난히 붉은 빛을 끌어 올린 단 한 그루의 벚나무에서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나무는 그렇게 사람이 알지 못하는 혹은 알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자기만의 살림살이를 지키며 긴 세월을 수굿하게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나무는 사람을 이 땅에 불러오기 위해 서둘러 자리잡았습니다. 가만가만 땅 속 뿌리에서부터 허공으로 내민 나뭇잎까지 모두가 사람의 살림터를 지어내기 위해 초록의 숨을 이어왔습니다. 어떤 나무는 긴 노동 끝에 이 땅에 사람이 나타나기도 전에 자취를 감추기도 했습니다. 기억은커녕 고작해야 화석의 흔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나무들이 그런 나무들이겠지요.
 
 
 
 
 
   메타세쿼이아가 그런 나무입니다. 메타세쿼이아는 공룡 시대에 이미 이 땅에 자리잡고 살았지만, 약 4천만 년 전에 이 땅에 찾아온 빙하기에 멸종한 나무로 알려져 있었지요. 그와 친척 관계를 이루고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나무로 세쿼이아 종류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에 중국의 한 산림공무원이 양쯔강 상류 지역에서 세쿼이아를 닮았으나, 세쿼이아라고 확정하기 어려운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화석으로만 발견됐던 옛 공룡 시대의 세쿼이아 종류의 나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문가들과 함께 나무의 정체를 보다 꼼꼼히 톺아보았습니다. 긴 연구와 조사 끝에 그 나무가 바로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그 나무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화석 속의 흔적만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공룡 상상도의 배경으로 그려넣던 그 나무였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그 나무는 제대로 된 이름도 가지지 않은 상태였지요.
 
 
 
 

 
 
   나무의 정체를 확인한 연구자들은 나무의 이름을 메타세쿼이아라고 했습니다. 세쿼이아 종류의 나무이되, 세쿼이아 이전의 나무라는 생각에서 ‘메타’라는 접두사를 붙인 겁니다. 나무의 훌륭한 생김새와 탁월한 생명력이 널리 알려지면서, 메타세쿼이아라는 근사한 이름의 이 나무는 차츰 그 생존 영역을 확대해갔습니다. 마침내 메타세쿼이아는 중국 양쯔강에서 가까운 한국과 일본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타세쿼이아는 세계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나무가 됐을 뿐 아니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나무가 됐습니다.

   우리나라에 메타세쿼이아가 처음 들어온 것은 1960년대였습니다. 가로수로 본격적으로 심어 키우기 시작한 곳은 전라남도 담양군이었습니다. 담양군에서 메타세쿼이아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72년이었지요. 좁다란 국도 변에 촘촘히 심었습니다. 자람이 매우 빠른 메타세쿼이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구쳐 올랐고, 일차선 국도는 고깔 모양으로 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아 그늘에 덮이는 장대한 풍경을 이루었습니다. 누구라도 이 가로수 길을 한번 지난 사람이라면, 그 장엄한 풍경의 인상을 잊지 못하게 됐습니다.
 
 

 
 
 
   담양 국도에 처음 심은 메타세쿼이아는 대략 3년생 4년생의 어린 묘목들이었으니, 그래봐야 고작 50년이 채 안 된 나무들입니다만, 나무는 이제 30미터 높이로 우뚝 솟아올랐습니다. 그 사이에 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은 산림청과 생명의숲가꾸기 국민운동본부에서 지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지정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의 가로수를 바라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심지어 이 길의 아름다움을 본떠 곳곳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가로수길을 지키기 위해 담양 지역민들이 노력도 남달랐습니다. 광주 순창간 국도 확장공사 계획이 나온 2000년에 그랬지요. 도로 확장을 위해 나무를 베어낼 상황이 다가오자 주민들은 ‘메타세쿼이아 살리기 군민연대’를 결성해 이 길을 지켜냈습니다. 아울러 학동마을 부근에는 아예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로 만들고, 메타세쿼이아가 아름다운 길 1.8킬로미터 구간으로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 긴 구간은 아니지만, 오직 사람만을 위한 길로 바꾼 것입니다.
 
 
 

 
 
장엄하게 줄지어 선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이 학동마을에서부터 시작되어 순창군과의 경계지점인 달맞이공원까지 총 8.5킬로미터 쯤 이어집니다. 자동차의 통행이 그리 많은 길은 아니지만, 간간이 달려드는 자동차들 때문에 나무를 오래 바라보기는 조금 불편합니다. 아무래도 공룡 시대의 추억을 간직한 우리 유전자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메타세쿼이아를 오래 바라보려면 아무래도 학동마을의 메타세쿼이아 길에 들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구간의 가로수 메타세쿼이아 근사합니다.

   나무를 심고 이토록 아름답게 가꾼 담양 지역민들에게 감사드릴 일입니다. 아울러 불과 50년 만에 이토록 아름다운 길을 이루어준 메타세쿼이아에게 더 큰 감사의 마음을 건네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지난 며칠 사이에 담양 메타세쿼이아 나뭇잎에도 가을 색이 올라왔겠지요. 나무가 살아온 날들의 천만분의 일도 채 지나지 않을 만큼의 짧은 순간이 흘렀건만 다시 또 나무가 그리워지는 가을날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
gohkh@solsup.com) 올림.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는 www.SOLSUP.com을 운영하고 있는 나무칼럼니스트이자 공익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의 고규홍 이사가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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