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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를 찾아서] 그보다 그를 더 잘 아는 사람들 앞에 내려놓아야 할 생의 굴레
작 성 자 천리포수목원 작성일 2013-10-15 08:22 조회 4,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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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아서] 그보다 그를 더 잘 아는 사람들 앞에 내려놓아야 할 생의 굴레
  

  
   [2013. 10. 14]

   하늘 높푸르고 나무들은 조금씩 초록 빛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도 쌀쌀한 기운이 또렷해졌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오늘 나무편지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나무로 오랫동안 우리의 사랑을 받아온 정이품송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보여드렸던 정부인송에 비해 정이품송의 건강 상태는 잘 아시다시피 이제 치명적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 동안 솔잎혹파리의 습격도 받았고, 지나친 복토에 의한 피해도 있었습니다. 급격히 건강이 나빠진 정이품송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큰 가지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93년 서쪽의 큰 가지를 부러뜨린 뒤로는 예전의 근사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교과서의 사진에서 보던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대칭형은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도 큰 바람만 찾아오면 정이품송은 큰 가지를 하나 둘 부러뜨려 내려놓습니다. 거의 해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더해지곤 합니다. 이제는 정이품송도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하고, 우리도 이제 정이품송을 보내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며칠 전에 찾아본 정이품송은 그 동안 숱하게 매달고 있던 주사액도 내려놓았습니다. 주사액만으로 정이품송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게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정이품송을 만나기 전에 짧은 시간이지만 보은군수를 뵙고 정이품송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무가 아름다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군수께서는 정이품송이 옛 모습을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임을 생각하고, 내년 봄에 흥미로운 이벤트를 열겠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건강하던 상태의 정이품송을 확인할 수 있는 옛 사진 공모전을 하시겠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속리산 수학여행이라든가 신혼여행 중에 찍은 사진의 배경에 나오는 정이품송의 모습을 찾아내겠다는 것이지요.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되기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필경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정이품송은 그렇게 차츰 우리 곁에서 ‘우리의 나무’로 살아온 긴 세월을 천천히 허공으로 띄워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겠지요. 더불어 살아온 누군가를 곁에서 떠나보낸다는 일은 그게 나무든 짐승이든 결코 편안한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이품송으로부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오랫동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사람과 나무가 더불어 살아가는 신비로운 이치를 생각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 곁의 나무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범위도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아프고 아파도, 한 그루의 나무는 결코 그냥 목숨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그의 존재를 앙망하며, 버팀목을 세우고, 주사액을 정성껏 놓아주는 사람들의 희망에 매달려, 썩어 문드러진 가지를 붙안고 버티느라 애써온 정이품송의 안간힘이 안쓰럽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더 깊어집니다. 사람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 죽음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정이품송이 이제는 편안하게 이곳에서의 삶을 내려놓는다 해도 그를 원망할 수 없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그 동안 내어준 것이 넘칠 만큼 많은 때문입니다. 그를 그 스스로보다 더 또렷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에 그에게 보이지 않는 마음의 편지를 보내는 정부인송도 있으며, 그의 훌륭한 유전자를 고스란히 붙들어 안고 남산 위의 소나무로 자라는 자손목도 있습니다. 정이품송은 죽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큰 나무로 오래 오래 남을 것입니다.

   우리 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더 바라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할 때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는 www.SOLSUP.com을 운영하고 있는 나무칼럼니스트이자 공익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의 이사인 고규홍 이사가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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