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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를 찾아서] 부는 바람이 낯설어, 지는 꽃을 오래 오래 바라봅니다.
작 성 자 천리포수목원 작성일 2013-09-04 15:23 조회 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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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생각] 부는 바람이 낯설어, 지는 꽃을 오래 오래 바라봅니다.
 
 
 
 
 
   [2013. 9. 2]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어떤 나무를 스쳐 지나 왔을까요? 바람이 낯설어 걸음을 멈춥니다. 처음 맞이하는 가을 바람도 아니건만 지금 이 바람이 참 낯설어서, 자꾸만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귀청을 찢던 매미 울음 사라진 자리에는 빛 바랜 나뭇잎이 어지러이 땅바닥을 헤엄치듯 날리고, 멀리 바라다보이는 하늘가에는 새파란 새털구름이 하늘하늘 흩어집니다. 창졸간에 계절이 옷을 갈아입은 모양입니다. 수목원 연못의 빛깔도 달라졌습니다. 풍성하게 솟아오른 연잎은 여전한데, 꽃잎 진 자리에서 따뜻한 빛으로 떠오른 연밥이 가을을 맞이합니다.
 
 

 
 
   언제나 한 걸음 늦게 꽃을 피우는 천리포수목원 꽃들이 재우치는 발걸음에 근심을 소복히 담아내는 가을 바람입니다. 살금살금 아침에 피었다가 햇살 퍼지는 한낮이면 꽃잎을 닫고 마는 가시연꽃은 삽상한 가을 바람에 아랑곳하지않고 아침 햇살을 담고 살짝 꽃잎을 엽니다. 얼핏 서늘하게 느껴지는 바람 결에 얼굴을 내놓은 가시연꽃을 바라보기가 차마 안타까워 눈길을 떼지 못합니다. 물 속에 뿌리 내린 가시연꽃도 가을의 이 빠른 발걸음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겁니다.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좋았을 걸 하는 혼잣말로 여린 생명의 안부를 챙겨봅니다만, 혼잣말 끝에 근심이 담깁니다.
 
 

 
 
   연못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가우라 Gaura lindheimeri Engelm. & A.Gray 하얀 꽃도 가을의 걸음걸이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가녀린 줄기에 매달린 하얀 꽃은 여전히 뒤늦은 여름 볕을 노래하던 지난 여름처럼 순백의 입을 쫑긋거립니다. 꽃잎이 나비를 닮아 나비풀이라고도 부르고, 우리의 바늘꽃과 같은 과에 속하는 풀이어서, ‘하얀 바늘꽃’이라고도 부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가우라도 어서 꽃잎 내려놓고,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 채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가을의 걸음이 조금씩 더 빨라질테니까요.
 


 
   바람이 낯설어 다시 또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됩니다. 낯선 바람은 여름을 빛내던 온갖 꽃잎들을 떨어뜨리겠지요. 갈무리의 계절을 잘 맞이하라는 신호입니다. 꽃잎 지고 씨앗 맺은 풀과 나무들은 바람소리 따라 땅 속에서 한해 뒤의 개화를 준비할 겁니다. 한들한들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꽃잎을 오래 바라봄니다. 한해 지나 다시 여름 오면 이 자리에서 다시 또 꽃이 피어나겠지만, 지금 피어있는 이 꽃은 다시 볼 수 없다는 깨달음을 움켜 쥐고, 지는 꽃 앞에 머무릅니다.

   지는 꽃을 바라보며 어떤 시인의 노래를 가만히 읊조립니다. “세상의 모든 꽃은 단 한번만 피어납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
gohkh@solsup.com) 올림.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는 www.SOLSUP.com을 운영하고 있는 나무칼럼니스트이자 공익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의 이사인 고규홍 이사가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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