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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무를 찾아서] 마을 옛 훈장님이 심고 그 제자들이 대를 이어 지켜와
작 성 자 천리포수목원 작성일 2013-07-23 14:35 조회 3,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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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아서] 마을 옛 훈장님이 심고 그 제자들이 대를 이어 지켜와
 

 
 
  [2013 7. 22]

“내 증조부께서 심은 나무입니다.” 지리산 자락의 함양 땅, 길 위의 느티나무 정자 그늘에서 우연히 뵈온 한 노인은 함양 목현리 구송 이야기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새벽 녘에 길 위에 올랐습니다. 하릴없는 교통 정체가 번거로워 대개는 주말에 길에 나서지 않습니다만, 지난 주말에는 경상남도 고성의 아늑한 절집을 찾아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전의 정체를 피하느라 여느 때보다 더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습니다. 수도권 정체만 벗어나면 시간은 충분히 여유로우리라 생각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도 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역시 주말은 주말이었습니다. 충남 천안시를 벗어날 때까지 교통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천안시를 지나면서부터 겨우 속도를 올릴 수 있었지요. 이제 중도에 몇 그루의 나무를 둘러 보아도 충분할 만큼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잠시 쉬고 싶어지면 번거로운 휴게소를 피해 주변의 큰 나무를 찾기로 했지요. 그래서 먼저 들른 곳은 충남 금산 요광리 은행나무였습니다. 천년을 살아온 나무의 건강이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둘레에 높다란 울타리를 둘러치고, 지난 봄부터 가을까지 여섯 달 동안의 생육개선 공사를 치르는 중이었습니다.
 
 

 
  남녘에 ‘폭염 경보’가 내려 느티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 무렵, 경남 고성까지 가는 길의 두번째 휴게소로 들른 곳은 함양 휴천면 목현리 구송이었습니다. 자동차 안의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느티나무 정자가 있었고, 나무 그늘에는 마을 어른 세 분이 따가운 햇살을 피해 쉬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나무 근처에 세우고 노인들께 인사를 올리고 정자나무 그늘에 들어섰습니다. ‘구송’을 찾아왔다고 말씀드리자, 그 중의 한 분인 올해 일흔셋 되신 정종만 어른은 반색을 하며 ‘바로 내 증조부가 심은 나무’라며 신명나게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목현리 구송은 줄기가 뿌리 부분에서부터 여럿으로 갈라져 자라는 소나무 종류인 반송입니다. 나무의 줄기가 아홉 개로 갈라지며 솟아올랐다 해서 ‘구송(九松)’이라고 한 겁니다. 반송은 부챗살 펼치듯 넓게 가지를 펼치며 자라는데, 그 가지의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을 정도로 많다 해서, ‘만지송’이라고도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마을에서는 처음 갈라진 숫자를 기준으로 해서 구송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경북 문경의 산마을 깊숙한 곳에 서 있는 반송이 여섯 개의 가지로 자랐다 해서 육송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아홉 개의 가지 가운데 두 개의 가지는 오래 전에 부러졌고, 일곱 개의 가지만 남은 상태라고 천연기념물 목록에 기록돼 있습니다만, 최근에 그 큰 가지 가운데 하나의 윗 부분이 더 부러졌습니다. 이제는 ‘구송’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됐지만, 그래도 옛 이름인 구송을 버릴 수야 없습니다. 목현리 구송은 살아남은 일곱 개의 가지가 반듯하게 부챗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솟아올랐는데, 그 생김새가 무척 수려합니다. 개울가 풍경과 절묘하게 어울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키는 15미터 쯤 자라올랐고, 나뭇가지가 펼쳐나간 폭은 20미터 정도 됩니다. 대개의 반송이 그렇듯이 규모만으로는 그리 대단하다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반송 중에서야 큰 편에 속합니다. 삼백 살 정도 된 것으로 짐작되는 목현리 반송은 처음부터 이 자리에서 자라던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 이야기를 천천히 들려주신 앞의 정종만 어른은 조선 후기인 백육십 여 년 전 쯤 자신의 증조부이신 정대영 어른이 어디에선가 이 나무를 구해 이 자리에 옮겨 심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대영 어른은 이 마을에서 서당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이셨다고 합니다.
 
 
 
 
   어른의 나무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증조부께서 나무를 심은 그 자리를 사람들은 구송대, 혹은 구송정이라고 부르고, 그분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정대영 훈장님이 돌아가신 뒤에 적어도 한해 한번씩 구송정에 모여 어른의 가르침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그 모임을 구송계, 구송정계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계원들 중의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살아계신 분들은 여전히 이 계를 통해 모인답니다. 때로는 돌아가신 분의 자제분이 새로 입계하여 계원으로 남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종만 노인은 이 계원들이 모여 치르는 행사를 꾸준히 지켜봤다고 합니다. 기억에 의하면 한때 백 명 가까이 되는 많은 분들이 좁다란 나무 앞에 모여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사의 형태로 치러지기는 하지만, 굳이 제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듯한 행사입니다. 이를테면 계원들은 나무 앞에 모여 처음에는 자신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신 정대영 훈장님의 뜻을 기리는 글을 낭독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시제(詩題)를 정해 각자 나무 앞에서 시문을 짓는 게 대개의 행사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행사는 요즘도 해마다 가을에 계속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그리 풍성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마을 훈장의 자손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뿌듯해 하며 풀어내는 정종만 어른의 이야기는 함양군 전 지역으로 확장됐습니다. 특히 함양을 대표할 만한 명소인 ‘함양 상림’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함양군에서는 상림을 관리하는 데에 굉장히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자랑스러운 숲이라는 데에는 덧붙일 말이 없지만, 상림에 쏟는 정성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우리 목현리 구송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정종만 어른이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시는 동안 곁에 계신 또 한 분의 마을 어른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며 말없이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정종만 어른의 나무 이야기가 매듭 지을 즈음이 되자, “구송 찾아 가는 길은 내가 일러주겠다”며, 꼼꼼히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목현리 구송을 처음 찾아온 게 아니어서, 노인의 길 안내가 아니어도 찾는 데에 별 문제는 없었지만, 마을 노인의 성의가 고마워 한두 마디 덧붙여 노인의 말씀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마을 어른들께 다음에 다시 찾아올 약속을 드리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정종만 어른은 떠나는 순간, ‘멀리서 우리 조상의 나무에 관심을 갖고 찾아와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자리를 떠난 때는 아직 정오는커녕 열한 시도 안 된 시간이었습니다. 경남 고성에서는 오후 세시에 강연을 해야 하니, 아직은 여유롭습니다. 함양에서 경남 고성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으니까요. 목현리 구송을 만나서 오랜만의 안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길을 따라 목현리 구송을 찾아갔습니다. 나무 곁으로 개울이 흘러서인지, 구송의 풍경은 언제라도 싱그럽습니다. 게다가 마치 한 송이 꽃처럼 다소곳이 서 있는 목현리 구송의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큼해집니다.

돌아보니, 목현리 구송을 찾아온 건 몇해만입니다. 상림을 비롯해 함양 지역의 다른 나무들을 보러 온 적은 적지 않은데도 그렇네요. 그래서 더 즐겁고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목현리 구송은 마치 엊그제 만났던 친한 친구처럼 다정다감하게 길손을 반겨 맞이합니다. 굳이 하루 종일을 나무 곁에서 보내지 않는다 해도 나무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투명한 성격의 나무입니다. 아마 이 나무는 제가 처음 만났던 2001년에도 그랬던 듯합니다. 참 이상하죠. 이렇게 처음 보는 순간부터 곁을 주는 나무가 있다는 게 말입니다. 그건 어쩌면 누군가의 다가섬을 간절하게 기다려온 나무의 울림이 있는 때문이겠지요.
 
 

 
   ‘나무 편지 추천 이벤트’를 일단 마무리해야 할 때가 다가옵니다. 나무편지 추천을 굳이 어떤 기간에만 해야 한다는 건 아닌데요. 이미 약속드린 7월 말까지의 추천에 대해서는 제가 감사의 선물로 책을 보내드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그 동안 나무편지를 추천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이달 말까지 나무편지를 추천해 주신 분들 가운데 다섯 분께는 따로 연락을 드려 제 책을 보내드릴 방법을 상의하겠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떠오르는 좋은 분들께 나무편지를 추천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솔숲닷컴의 왼쪽 메뉴 가운데 [나무편지 추천하기]에 들어가셔서 글을 남겨주셔도 되고, 홈페이지 접속이 불편하시다면 제게 이메일(gohkh@solsup.com)로 직접 알려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
gohkh@solsup.com) 올림.
 
 
 
'솔숲에서 드리는 나무 편지'는 www.SOLSUP.com을 운영하고 있는 나무칼럼니스트이자
공익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의 이사인 고규홍 이사가 매주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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